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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현대 한의학사


사실 처음부터 한국의 한의학에 대해 얘기를 하자면 너무 갑작스러울것 같아, 첫글에서는 주변국 사례를 먼저 보여드리려 합니다.


일본에서 메이지 유신 이후 한의학과 한의사(당시에는 의사) 제도가 폐지되었다는것은 너무나 잘 알고계신 사안일것이라 생각합니다. 당시 일본은 하루빨리 서양 열강과 같은 사회를 만들고자 했으므로, 구습이라고 생각되었던 한의학은 폐지의 대상이었을것입니다. 그러나 한의학은 제도적으로 없앤다고 없어지는것이 아니기에, 주로 약학계의 인사들에 의해 전수, 발전이 이어지는 한편, 한의사였던 아버지가 자식은 서양의사로 만들었기에 한의학의 영향력은 남아있을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접골사, 침사, 구사와 같은 유사의료직종과 여전히 동양적 색채를 강하게 가지고 있던 무술 관련 인사들에 의해서도 한의학의 이론과 임상적 내용들은 일부나마 명맥을 이어오게 됩니다.


한편, 대총경절, 시수도명과 같은 서양의사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던 시기인 1930년대는 비단 의사들뿐만 아니라 일본내의 지식인들에게서도 '근대의 초극'이라던가 하는 기존의 서양사상일변도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동양적인 것에 대한 사상, 재평가가 본격적으로 발흥하였으며, 당시로서는 한계에 부딛혔다고 생각되던 서양모델을 대체, 극복할 사회와 지식의 모델이 동양적인것에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것들이 극단으로 치닫게 되면서 2차대전에서의 우스꽝스러운 일본군의 모습으로도 나타나는 부정적인 면이 있기도 합니다만, 어쨌거나 의학계에서도 동양문명에 기반한 한의학이 기존의 서양문명에 기반한 서양의학을 대체할수 있으리라 믿고, 한의학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함께 새로운 부흥의 분위기를 얻게 됩니다. 서울대 의대의 초대학장을 지낸 김두종이 만주에서 군관으로 있을 때에 상한론 등을 통해 한의학연구를 했다는것은 종두법을 도입한 지석영선생님이 한의사였다는 사실만큼이나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중의 하나입니다. 


2차대전은 일본의 패배로 막을 내렸지만, 일본내에서의 한의학 연구 분위기는 쉽게 사그러들지 않았습니다. 1949년 일본내에서는 일본동양의학회(당시 가칭)가 정식으로 설립되고 한의학의 유력인사 11명을 회원으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갑니다. 1950년에는 게이오의대강당에서 첫 공식 발족을 하게 됩니다. 게이오 의대는 현재도 일본내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는 한의학 연구기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일본내에서 한의학은 의료계에서 극히 마이너한 역할만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일부 특수한 경우가 있어서 입원환자에 대한 내과적 치료 역시 한약으로 대치한 사례도 있었습니다만, 한 지방병원에 국한된, 특이한 사례였다고 보여집니다. 한국에서의 경희대 한방병원도 과거에는 그정도까지 역할까지도 했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선생님들이 병원에 남아계시지는 않겠지만.. 대개는 전통적인 의사가문의 의사들이 가법에 따른 처방을 한다거나, 한방이론에 매력을 느낀 일부 의사들이 시험적으로 한약투여를 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1970년대 이후 중국의 빗장이 열리며 중의학의 모습이 점차 일본에도 알려지게 되면서, 이에 몇몇 일본의사들이 한의학의 본토인 중국에 직접 유학을 가기도 하였지만, 이들이 의학계에 미친 영향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것입니다. 


정작 일본 한의학의 발전은 엉뚱하게도 일본 의사협회장의 파격적인 결정에 의해 시작이 됩니다. 게이오 의대 출신인 무견태랑은 거의 종신으로 일본의사회장을 지낸 인물로 의학계뿐만 아니라 정치계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한 인물입니다. 그는 일본에서 자생적으로 발달한 한의학이 제도적으로 홀대받는것은 옳지 않다 여기고 국민건강보험에 한약을 대거 적용대상으로 삼게 됩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는 한의학을 통해 건강관리를 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츠무라 제약의 성장 역시 이러한 보험적용에서 그 발전동력을 얻었다 할수 있겠습니다. 


점차 수면 아래서 영향력을 확대해가던 일본내 한의학계는 1991년 일본의학회에 정식으로 학회 인증을 받게 됩니다. 2005년에는 한방 전문의 제도가 공식적으로 인정이 되었으며, 현재도 수련과목의 하나로 되어 있습니다. 2008년에는 표방진료과목으로서도 인정을 받게 됩니다. 일본 동양의학회가 설립될때 목표로 하던 3대 과제가 발족 60년 가까이 되어서야 비로소 해결이 된것입니다. 또한 2001년부터 시작된 한의학 의무교육은 현재 일본내 모든 의과대학에서 시행되고 있습니다. 이제 남은 과제는 국시에 한의학 지식 문제가 출제되도록 하는것이라 하는군요. 또한 도쿄대, 나고야대와 같은 몇몇 구제국대학을 제외한 모든 국립대학 의과대학 부속병원에는 한의과가 정식 진료과목으로 되어 있으며, 사립대학병원이나 일반 2,3차 병원에서도 한방 진료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학문적인 면에 있어서도 2010년 발간된 EBM위원회의 자료집(한국에서는 '근거중심의 한약처방'이라는 이름으로 번역출간)에서 알수있듯 점차 현대의학의 표준적인 방법을 따라 한의학을 체계화, 객관화 하려는 노력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는것을 확인할수가 있습니다. 최근의 연구로는 육군자탕과 PPI를 무작위 대조시험을 통해 난치성 역류성 식도염에 대한 효과를 비교한것이 있습니다. 결과는 PPI의 증량요법과 육군자탕 투여는 임상효과면에서 차이가 없다는것입니다. 현재 극히 소수를 제외하면, 일본의 의사들은 1회 이상 한약 처방을 해본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수술 전후에 한약복용을 통해 후유증을 줄이고, 환자의 회복을 돕는다거나, 암센터에서 한약투여를 통해 항암제 부작용에 대한 완화치료를 한다던가 하는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일본의 한약은 사실상 츠무라에 의해 일종의 표준이 마련되어 있어서, 의사들은 쉽게 정보를 치료 경험을 공유하고 약물의 기전을 연구하며 발전시켜나갈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본내에서도 한의학의 미래를 걱정하는 분위기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중의학의 발전입니다. 중의학(TCM)이 중국정부의 강력한 추진에 힘입어 전세계적인 영향력을 확대해가며 세계 표준으로서 자리잡고 있다는것은 여기저기서 감지할수 있는 사안입니다. 이로 인하여 일본내 독자적인 의학으로서의 한의학의 이미지가 사라지고 중국의 영향 안에 있는 의학이 된다는것은 일본내에서의 한의학의 정체성에 좋지 않은 작용을 할것이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또한 나고야 의정서의 발효로 인하여, 한의약산업계가 막대한 로열티를 중국에 지불해야 하는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이러한 중국의 발전에 맞서기 위해 일본 정부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중국의 발전 속도를 생각해보면 너무 미진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편에서는 중국의 한의학(중의학)의 현재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Comment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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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굳 2012.02.29 21:38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

    다른 나라에서의 한의학의 현주소를 알게 해주는 글이네요...

    우리나라는 일본을 따라하는 경향이 있던데 잘하면 우리도 독자적인 한의사가 양방 전문의 중 하나로 되는 날이 올수도 있겠네요..

    그렇게 되면 한의학이란 학문은 명맥을 유지하지만 한의사라는 직업은 죽게되는 것 인가요?
  • ?
    밝은미래 2012.03.01 20:38
    1950년대 정신과 의사는 정신분석이론에 근거해서 환자의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직군이었지만, 2010년의 정신과 의사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체적으로 신경과학 이론에 근거해서 환자의 질환을 치료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한의사와 한의학의 정의는 고정된 실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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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인28호 2012.02.29 22:55
    너무나 잘 정리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 ?
    킹죠 2012.02.29 23:52
    잘보고 갑니다 ㅎㅎ
  • ?
    삼십칠 2012.03.01 01:05
    감사합니다~
  • profile
    쌍둥아빠 2012.03.01 13:10
    일목요연한 정리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 profile
    미래인 2012.05.08 22:32
    잘 읽고갑니다. 명료하고 이해하기 쉬운 구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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