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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편은 잠깐 쉬어가는 차원에서, 지금 게시판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주제인 '앞으로의 한의학의 발전방향'에 대한 일본 의사들의 견해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본 동양의학회에서 발간한 '전문의를 위한 한방의학'(미번역)의 한 챕터를 요약한것입니다. 저의 의견과는 다소 다른면이 있지만, 일본 한의학계의 객관적인 의견을 들어볼수 있는 글이라 생각이 됩니다. 한의학과 서양의학의 패러다임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것인가에 대해 한의학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하고 있다는것을 확인할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현재의 상황을 냉철히 인식하면 현대과학적인 연구만이 한의학이 학문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인정받고 발전해나갈수 있는 길이라는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무리 한의학이 위대한들, 지금의 세상에서 과거 그대로의 모습을 고집하는것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야 어쩔수가 없는것입니다. 중국은 80년대 들어 자랑스레 여기던 사회주의 노선을 버리고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받아들이는 '도광양회'의 시기를 거친 결과, 이제는 '대국굴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의학 역시 지금은 절치부심하며 실력을 키우지 않으면 안된다는것, 그 방법이 혹자의 눈에는 굴욕적이거나 패배한것으로 보여지더라도 그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것을 명심해주셨으면 합니다. 임상의사의 눈에는 검은 고양이건, 흰 고양이건 환자만 잘 고치면 됩니다. '한의학적'이라는 관념을 검은 고양이에만 고정시키지 말아야겠지요. 


1. 패러다임의 차이를 명확히


 한의학의 패러다임은 분명히 서양의학의 그것과는 다릅니다. 우리가 중요시 해야할것은 기존 한의학의 패러다임을 충분히 이해를 하고, 이것을 지금의 임상에서 활용할수 있도록 임상기술을 연마하는것입니다. 과거 의사들의 경험을 소중히 여기고, 본인의 임상적 통찰을 깊게 다져서 좀더 높은 수준의 치료를 할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 과정에서는 본인이 발견한 특이적인 증후의 '타당성'을 검증하는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가능한 범위에서는 임상적으로 밝혀낸 '암묵적 지식'을 만인이 공유할수 있는 '보편적인 지식'(형식지)으로 발전시킬수 있도록 노력하는것도 중요합니다.


 한의학계에서는 무작위 대조시험보다는 증례보고가 중요시 되었는데, 그 이유는 진료의 개별성에 높은 가치를 두고있었기 때문입니다. 진단에 있어서는 최대한 다양한 생체정보를 받아들이고, 이를 경험의 축적에 따라 기술적으로 발전시키는것이 기초가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다수의 증례를 집적하여, 전향적인 임상연구를 진행하는것도 '타당성의 검증'이라는 면에서는 불가피한것입니다. 일본한의학의 '방증상대'의 방법론은 이 검증작업에 유리한점이 있습니다.


2. 동서의학 패러다임의 조화


 애시당초 다른 두개의 패러다임을 융합하여 통합시키는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두개의 상이한 패러다임을 각각 인정하고 협조할수 있도록 하는것은 가능합니다. 눈앞의 환자에 대해 서양의학의 패러다임에 따라 진단을 실시하고 이에 더해 한의학적 패러다임에 따라 '증'을 결정하여 최선의 치료성과를 얻도록 하는것이 중요합니다. 치료는 한약 단독도, 양약 병용도 가능합니다. 이 모든것의 목적은 좀더 빠르고, 안전하고, 경제적으로 환자의 건강회복을 돕는데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한약의 경우에는 철저한 한의학적 패러다임에 의해 결정하는것이 중요하지만, 서양의학의 도움을 받을수 있다면 받아들이는것도 중요합니다. 예를들어 두부MRI상 다발성 미소뇌경색 병변이 확인된다면 '어혈'로 생각할수 있으며 척추관협착증을 '혈허'로 보는것을 상정할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한방전문의가 전문가로서의 영역을 다지는것이 중요합니다. 일본호흡기학회에서는 copd에 대하여 보중익기탕을 고려할수 있다고 했지만, 한방전문의 입장에서 보면, 가이드라인에 제1선택약으로 보중익기탕, 임상적 반응이 없는경우 한방전문의에게 consult. 라고 명시되도록 만들어야 할것입니다. 

 

 2008년부터 일본 내에서는 12개 진료과목에 '한방'이라는 명칭을 붙일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방내과' 혹은 '내과한방' 등이 그것입니다. 이렇게 제도적으로도 한의학의 입지를 넓히는것이 중요합니다.


3. 약리기전의 해명


 한의학의 패러다임은 자연과학과는 무관한 길을 걸어온것이 사실입니다. 그러한 결과 '어째서', '왜 그런것일까'하는 의문을 해소하지 못한것도 사실입다. 또한 의문이 생긴 경우에도 객관적으로 해명할 수단을 개발시키지 못한것도 문제입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것은 전근대적인것이라고 밖에 할수 없습니다. 물론 한의학의 진단이나 한약처방을 과학적으로 해명하는것은 쉬운일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수많은 변인를 동시에 해석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약은 복합성분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약리학의 주된 연구방법은 요소환원론적인 방법이므로 딜레마가 생길수밖에 없습니다.


 필자는 인진호탕이 Fas리간드에 의해 유발된 간세포의 세포자멸사를 억제하는 작용을 밝혀냈는데, 이 작용은 산치자에 포함된 게니핀에 의한것임을 확인한바 있습니다. 이래선 인진호탕을 구성하는 대황은 아무것도 아닌것이라 할수 있겠으나, 대황은 이담작용, 사하, 항산화작용을 가지고 인진호탕 전체로 작용을 합니다.

 

 현재 과학의 요소환원론적인 한계를 이해하고 그 도움을 얻어 한걸을씩 진전하는것이 한의학의 발전이 되겠지요. 최근에는 바이오인포매틱스와 같은 복잡계 해석 방법이 발전되어가고 있어, 이를 어떻게 활용할것인가 하는것이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4. 근거의 축적


 한의학의 패러다임을 활용하는것이 임상적으로 의의가 있다 하더라도, 현재의 제도에서 이점을 납득시키기 어려운 상황은 인정해야 합니다. 일본에서는 서양의학 패러다임이 공고한 상황을 직시하고 한방엑스제를 보험약가에 수재한 덕에 한의학이 기적적으로 부활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의료제도 안에서의 한의학의 평가는 매우 낮은것이 현실입니다. 특정 질환에 한방진료를 개입시키면, 이에 대해 보험에서는 특정 질환에 대한 특이적 치료가 아니라고 거부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진료보수 역시도 서양약과 한약을 병용하는경우 한약에 적용되는 보험만 삭감되고있습니다. 참으로 부당한 처사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근거를 축적하는것이 중요합니다. 한의학은 맞춤의학이므로, 다수 증례의 해석에 기반한 근거 축적은 근본적이라고 할수는 없겠지만, 현상황을 고려하면 어쩔수 없는것입니다. 현재 일본동양의학회가 학회주도적으로 근거축적작업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방을 경시하는 문제는 단지 순수한 학문적 문제가 아니라 제한된 의료자원을 어떻게 분배하는가에 대한 '정치적인 요소'가 내포되어 있다는것을 알아두어야 합니다. 한방의료의 개입으로 의료경제적인 효율성 증가에 대한 근거를 축적하여, 이를 근거로 행정당국에 어필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5. 새로운 치료의학으로


 글로벌 스탠다드라는것의 이면에는, 강대국에 유리한 의도가 숨어있다는것은 부정할수가 없습니다.  의료에 있어서 일본은 서양의학의 패러다임 안에 한의학의 패러다임이 들어가있는 특이한 제도의 국가입니다. 그러므로 글로벌 스탠다드를 무조건 따를 필요는 없습니다. 일본의 국민건강보험제도는 글로벌스탠다드라고 할수 없지만, 일본이 세계에 자랑할만한 독자적인 제도중의 하나입니다. 마찬가지로 의료제도에 있어서도 동서의학의 병존을 통해 임상성과를 높이고 의료경제적으로 효율적인 진료를 통해 국민이 만족할수 있도록 하는것이 중요합니다.


더 읽을거리 : 근거중심의 한방처방(군자출판사), 근거중심의 한의치료(군자출판사)


Comment '4'
  • ?
    배굳 2012.03.24 14:10
    좋은자료 감사합니다~
  • ?
    삼십칠 2012.03.26 00:04
    잘 읽고 갑니다!
  • ?
    必心醫 2012.03.26 23:19
    일본에서 한방 전문의 제도가 도입된 것에 많은 기대를 걸어봅니다 ^^
  • profile
    쌍둥아빠 2012.03.29 21:38
    좋은 글 감사합니다 .

    글은 진작에 읽었는데 댓글은 오늘 다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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